F1 그랑프리의 모나코 서킷은 독특하다. 오래된 중세풍의 유럽 도시의 시내에서 F1 자동차들이 경기를 한다. 유럽적인 골목을 굽이굽이 돌며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머신들이 경쟁하는 것을 보는 것은 꽤나 독특한 경험이다.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턴하며 달려야 하는 모나코 서킷은 추월이 어렵기로도 유명하다. 그렇다 보니, 보통 출발 순서대로 순위가 결정되는 서킷이기도 하다.
여기,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나고 자란 모나코의 발코니에서, F1 그랑프리 경기를 즐겨 보던 한 소년이 있다. 그 소년은 자라서 Ferrari F1 팀 드라이버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2024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했다. 향년 26세. 그의 이름은 샤를 르클레르(Charles Leclerc), 모나코 출신의 F1 드라이버다.
르클레르에게 쥘 비앙키는 꿈이자 선망이었다. 그는 샤를 르클레르의 멘토이자, 르클레르의 대부이기도 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쥘 비앙키는 촉망받는 젊은 F1 선수였다. 모두가 페라리의 다음 선수는 쥘 비앙키가 될 거라고 했다. 그러나, 세찬 비가 내리던 2014년 일본 그랑프리에서 쥘 비앙키는 레이싱에 참가하던 중 사고 차량과 부딪혀 뇌를 크게 다쳤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페라리에 세 번째 운전석이 있다면 그것은 쥘 비앙키의 것이라고 얘기했었지만 결국 비앙키는 페라리 좌석에 앉아보지 못한 채 산화했다. 시간이 흘러, 2018년, 그의 멘티이자 그를 존경하던 젊은 드라이버 샤를 르클레르의 페라리 이적이 확정되었다.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멘토의 꿈을 비로소 이뤘다.
2017년, F2 시즌 도중 르클레르의 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했다. 르클레르는 경기 사흘 전 그 사실을 전해 들었다. 사람들은 그가 무너질 것을 걱정했다. 그는 묵묵히 서킷에 올랐고 우승을 했다.
르클레르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여러 레이싱 경기에 함께 참여하면서 친해진 앙투안 위베르라는 친구가 있었다. 경쟁하는 라이벌이자 서로를 이해하는 친구로서 그들은 함께 자라고 함께 경쟁했다. 2019년 F2 경기 도중 큰 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앙투안 위베르가 그 사고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며칠 뒤 열린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샤를 르클레르는 생애 첫 F1 그랑프리 우승을 했다. 경기가 끝난 후 사고로 죽은 위베르를 기리며 모두들 1분간 묵념을 했다. 그는 “오늘 우승으로 어린 시절 꿈이 이루어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함께 레이스를 했던 친구를 잃었다. 오늘 승리는 위베르에게 바치겠다”라고 말했다.
르클레르는 지금껏 단 한차례도 모나코 서킷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맨 앞에서 출발하는 것을 의미하는 폴 포지션을 3차례나 차지했음에도, 갖은 이유로 우승에 실패했다. 르클레르는 F2 선수 시절 폴 포지션으로 모나코 그랑프리에 참가했지만 서스펜션 손상으로 경기를 마치지 못했다. F1으로 옮긴 후 2021년에도 폴포지션을 차지했지만 퀄리파잉 경기 도중 충돌로 인해 드라이브 샤프트가 고장 나고 본 경기 때까지 차가 수리되지 못하는 바람에 경기에 참여하지 못했다. 2022년에도 어김없이 폴 포지션을 차지했지만, 페라리 팀의 전략적 오판으로 인해 4위로 마무리했다. 추월이 어려워 출발 순서가 곧 경기의 성적이 되는 모나코 서킷에서 그는 3 차례나 맨 앞자리에서 출발했지만 우승하지 못했다.
이외에도 2018년 브레이크 고장으로 리타이어, 2019년 페라리의 전략적 오판으로 인한 퀄리파잉 참사 그리고 16 그리드 출발, 2023년 퀄리파잉을 3위로 마무리했으나 경기 도중 반칙으로 인해 페널티를 받아 6그리드 출발 및 6위까지. 모나코 그랑프리에 그가 도전한 횟수는 총 6차례, 그러나 한차례도 우승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모나코 그랑프리의 신이 그를 반기지 않는다고, 세상이 그를 억까한다고 생각할만했다.
2024년에도 그는 폴 포지션을 차지했다. 하지만 과거 3번이나 폴 포지션을 따내고도 우승을 하지 못했던 그였기에 페라리의 팬이라면 누구나 끝날 때까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이번에는 어떤 상상 못할 문제가 발생해 르클레르의 우승을 방해할지 몰라 팬들은 조마조마했다. 르클레르 본인도 그러했으리라. 그러나 큰 이변은 없었다. 폴 포지션으로 출발한 르클레르가 드디어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했다. 7번째 도전 만에 첫 우승이었다.
샤를 르클레르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를 응원하게 된다. 26세의 젊은이가 겪기엔 결코 가볍지 않았을 시련을 그는 연이어 겪었다. 그리고 그 시련 앞에서 그는 꺾이기 보다 더 강해지는 길을 택해왔다. 멘토 쥘 비앙카의 죽음도, 아버지의 죽음도, 친구 위베르의 죽음도 그를 멈추게 할 수 없었지만, 유독 모나코 그랑프리의 우승운 만큼은 없었던 샤를 르클레르. 수많은 역경을 딛고 드라마처럼 우승을 거둬낸 그에게, 늦었지만 심심한 축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