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재밌다

단순한 일상어에도 사려깊은 생각이 담겨있다

오늘 친구와 점심 식사를 함께 하다가 일본어 이야기가 나왔다. 일본에서는 뭔가 요청할 때, “お”(오)를 붙여 공손함을 표시한다고 했다.

예를들어, “돈좀 주세요”는 “お金をください(오카네오구다사이)”인데 여기서 “카네”는 돈을 의미한다.

재밌는게 “돈” 앞에 접두사로 “お(오)”가 붙는 것이다.

  • 부탁드립니다: 오네가이시마스 (네가이: 부탁)
  • 물좀 주세요: 오미즈오구다사이 (미즈: 물)

이렇게 “오”가 붙으면 보다 공손한 표현이 된다고 한다.

친구는 이게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한국도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우리도, “물 주세요” 라고는 하지 않는다. “물 좀 주세요”라고 한다.

“수저 주세요”도 없다. “수저 좀 주세요”다.

우린 “좀”이 붙는다.

한편, 영어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Can I have some water?”

“Some”이 붙는 것 같다.

재밌는 건, 이 “some”이란 표현인데,

  • 많지 않음
  • 약간
  • 어느 정도

주로 적은 양을 의미하는 표현인데 명시적인 양은 아니고, 꼭 적은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즉, random한 state를 갖는다.

‘너가 생각하기에 적절한 양의, 그러나 결코 많이는 아닌데, 물을 줘’ 정도의 의미가 된다고 생각한다.

양에 대한 판단의 권리를 타인에게 부여하는 한편, “약간”이라는 의미도 담아 부탁의 무게감을 가볍게 가져가고 있다.

한국어의 “좀”과 비슷하면서도 요청의 양이 “조금” 처럼 명시적이지 않고 (”조금”은 적은 것을 의미하므로), 타인에게 그 양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는 점이 재밌다.

언어에는 철학이 있다

생각해보면 언어들은 철학을 담고 있기도 하다.

동지라는 단어와 companion이라는 단어의 비교도 제법 재밌다.

동지(同志)는 한자를 풀면 ‘한마음 한 뜻’,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다.

동지는 영어로 companion이다. companion은 ‘함께’를 의미하는 ‘com’과 빵을 의미하는 ‘pan’(스페인어 pan 등 라틴어 계열에서 유래), 그리고 사람을 의미하는 ‘ion’이 붙어 만들어진 단어라고 한다.

즉, 영어 companion을 풀면 ‘빵을 나눠먹는 사람’이다.

동양권에서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친구이자 파트너였다면, 서양권에서는 빵 한 쪽도 나눠먹는 사람이 친구이자 파트너였나 보다.

한편, 조금 과장하자면 이런 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양은 ‘뜻’, 즉 각자의 믿음이나 사상, 철학, 신념을 중심으로 나와 남을 분리했고, 서양은 ‘빵’ 즉 물질을 나눌 수 있는 관계로 나와 남을 분리했다.

동양이 ‘뜻’을 강조한 관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면, 서양은 ‘빵’을 중시한 유물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언어학자는 아니지만 언어는 오묘해

나는 언어 전공도 아니고 언어학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다보니 주워들은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언어란 참 묘하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는 인류의 역사와 그동안의 생각들, 지혜, 사상, 철학이 담겨있는 것 같다.

중학교 때 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 안한다로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사고는 언어와 독립적이라는 입장에서 토론에 참여했던 것 같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사고가 언어를 규정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언어가 오랜 세월 사고로 규정되다 보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부지불식간에 언어에 영향을 받은 사고를 한다.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한국에서는 ‘우리’라는 표현을 항상 붙이지만, (우리 회사는, 우리 집은) 미국에서는 ‘I (나)’를 주로 붙이는 것(My company, My family) 등이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로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무튼,

언어는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