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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이라는 악기

Created
Apr 5, 2024 04:4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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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바이올린
2023년 새해 계획으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 막 바이올린을 배운지 2년 차이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평생 이 악기를 배우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바이올린의 매력은 너무 다양해서 하나로 콕 집어 말할 수 없다. 호불호의 영역이겠지만, 현악기 특유의 소리, 그리고 현악기 중에서도 고음역대에 속하는 소리도 매력이라고 생각하고, 평생 배워도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 난이도도 매력의 원천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음악의 도구이면서 하나의 어엿한 예술작품이라는 사실도 매력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가격대가 있는 바이올린들은 지금도 장인이 수공예로 나무를 깎고, 이어붙여서 만든다. 이 대단한 악기를 완성시킨다는 것만으로도 장인들은 충분히 뛰어난 존재들이지만, 일반인도 이름을 기억하는 역사적인 인물들도 여럿 있다.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니콜로 아마티, 바르톨로메오 주세페 괴르네리 등 1600년대부터 1700년대 사이를 살아간 제작자들은 유난히 유명하다. 그들이 만든 악기들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연주하는 악기이며, 비싸게는 200억 가까운 가격에 판매되기도 한다.
 
몇 년 전, 이건희 회장이 작고하고 그의 미술품 컬렉션이 대중에 공개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많은 훌륭한 미술품이 박물관에 걸려 대중을 맞이하지만, 개인 소장으로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미술품도 많다. 부자도 각양각색이라, 역사에 길이 남을 그림을 산 후 박물관에 대여해 대중과 함께 나누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구중궁궐 속 자신의 창고에 고이 모셔두고 혼자만 즐기는 사람도 있는가 보다.
 
최고의 바이올린은 가격도 여느 고흐 작품 못지않다.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들은 낙찰가가 250억에 달하니, 고매한 화가의 작품에 비견할만하다. 바이올린은 그 자체로 목공예품이고, 소리를 내는 기능성 못지 않게 심미적인 요소도 갖추고 있으므로 금액으로 보나, 미학적 가치로 보나 미술품과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바이올린은 연주될 때 비로소 생명력이 살아난다는 점이 그림과는 또 다른 재미난 점이다.
 
아무리 최고의 제작자가 만든 바이올린이라도, 창고에 오래 보관되면 그 소리는 퇴색된다. 바이올린은 켤수록 소리가 좋아지고 연주하지 않으면 소리가 나빠진다. 소유하고 바라만 보면, 금전적 가치도 점차 하락하는 것이다. 최고의 연주자로 하여금 꾸준히 연주하게 해야만 바이올린의 가치도 함께 발전한다.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생가를 가면 모차르트의 바이올린을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는데 그런 이유에서 창고에 모셔두기만 하지 않고 종종 꺼내서 연주자들이 연주하게 한다.
 
실제로도, 스트라디바리나 괴르네리 델 제수 같은 위대한 바이올린은 부자들만 소유할 수 있는 값비싼 예술품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연주자들이 자신의 악기처럼 쓰고 있다. 유명한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그 콩쿠르을 서포트하는 재단이나 바이올린 소유자가 우승자에게 악기를 대여해 주기도 하며, 음악 재단 차원에서 재능 있는 연주자들에게 악기를 장기간 대여해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격이 비쌀수록 정말 소리도 좋은가? 소리라는 것이 개인적인 취향의 영역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선까지는 비쌀수록 명확히, 객관적으로 더 나은 소리가 난다. 예를 들어 나는 200만 원 대 악기를 쓰고 있는데, 이 가격대에서는 일단 소리가 크고 울림이 좋은 악기라면 가격 대비 괜찮은 악기다. 하지만 천만원이 넘는 악기와 비교하면 명확히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한 음을 연주한다고 할 때, 내 악기는 상대적으로 밋밋한 소리가 난다. 울림이 좋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마치 햄버거라고 하면 패티 층이 단순한 치즈 버거 같다. 빵 두 개 패티 하나 치즈 한 장 케첩 약간의 느낌이다. 이게 천만 원짜리 악기가 되면 패티의 갯수도 늘어나고 사이사이에 양상추나 피클, 피망 같은 맛들이 추가된다. 즉, 비싼 햄버거의 맛이 다양한 맛들의 조화인 것처럼, 비싼 악기는 소리가 풍성해지는 것이다. 이 소리의 차이는 비교적 명확해서, 200만원짜리 악기와 300만원짜리 악기 정도의 차이야 나같은 취미생은 구분하기 어렵지만, 1천만원 이상 차이가 나면 특히 낮은 가격대일수록 확실히 차이를 느끼게 된다.
 
그럼 훌륭한 연주자가 싸구려 악기를 쓰면 어떻게 될까? 확실한 건 뛰어난 연주자는 저렴한 악기로도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유명한 연주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악기의 퀄리티가 연주자의 상상력의 한계를 결정한다고들 한다. 비싼 악기일수록 소리도 풍성하지만, 더 다양한 색깔의 연주를 쉽게 해낼 수 있다. 표현력이 좋은 것이다. 표현력이 좋은 악기를 경험해 봐야 자신이 낼 수 있는 다양한 음악의 색깔들이 확장된다고 한다. 저렴한 악기를 쓰다 보면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선 긋듯이 그어져 버린다고 한다.
 
물론 일정 금액 이상이 되면, 차이는 점차 미세해지고, 취향에 따른 차이가 커지는 것 같다. 아반떼와 소나타의 차이는 크게 느껴질 수 있지만, 포르쉐와 페라리의 차이는 그보다 작고, 페라리와 부가티의 차이는 더 작은 것과 같다(같을 것이다. 사실 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바이올린을 배운 지 2년 차, 작은 꿈이 하나 생겼다. 나도 부자가 되어서 고명한 바이올린을 소유하고 싶다. 그리고 그 악기를 내가 정말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유망한 연주자에게 무상으로 빌려주고 싶다. 역사 속에 보존되어야 할 훌륭한 악기를 보전하는 것, 그리고 그 악기를 당대의 뛰어난 연주자들에게 빌려줘 그들의 영감을 자극하는 것, 이 또한 멋진 세상에의 기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