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발자다. 취미로 코딩을 배워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사부작사부작 만드는 느낌이 좋아서, 검은 화면이 평화로워서 개발자라는 직업까지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직업으로서의 개발자는 취미와는 사뭇 달랐다. 돈을 받고 해야할 일을 기간 내에 해내는 일이 꼭 즐겁지만은 않았다. 주어진 기간 안에 실수 없이 일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다. 1-2년차 때는 제법 회의감도 많이 느꼈고, 이 길이 내 길인가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여전히 오늘도 확신 없이 개발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지만, 문득 바이올린을 취미로 배우다 뭔가 깨달은 것이 있어, 그것을 내 삶에도 적용해보려 한다.
나 자신이 하는 일에 몰입해 그것을 완전히 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는 그 일을 다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올해 초 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다. 중학생 무렵 아주 잠깐 배운 적이 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흐지부지되었었다. 덜컥 사버린 악기만 창고에 들어가 속절없이 나이만 먹고 있었는데, 작년 말 문득 ‘클래식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버렸고, 덜컥 1월 말부터 바이올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학원에서는 연 2회 학원생들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연주회를 하는 데, 나는 이번 연말에 있었던 공연에서 연주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만 참여할 생각이었는데, 선생님의 권유로 바흐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BWV 1043)을 협연하게 되었다. 원래는 두 명의 바이올리니스트와 오케스트라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연주하는 곡인데, 두 명 중 한 명으로 협연을 한 것은 아니고, 1바이올린 4명, 2바이올린 4명 총 8명에서 솔로를 하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을 했다. 나는 2바이올린 4명 중 1명이었다.
바이올린 11개월차인 나에게 협연은 쉽지 않은 목표였는데, 아무리 연습해도 어려운 구간은 계속 어려워서, 처음에는 재미삼아 하던 것이, 끝날 무렵이 되니 모든 것을 걸고 연습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금요일마다 휴가를 쓰고 연습을 했고, 퇴근하고 매일 연습하러 가 3시간 이상 꾸준히 했던 것 같다. 주말에 친구들과 잡았던 약속들도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취소했다. 회사에서 빠르게 퇴근하고 연습실로 달려가느라 근무시간이 부족해서 잠을 줄여 출근을 일찍하게 되었는데, 하루에 6시간을 못 자며 회사와 바이올린을 병행했던 것 같다.
같은 곡을 처음에는 느리게 연습하다 메트로놈 템포를 조금씩 올리며 계속 연습했는데, 하다 보니 내가 인간 메트로놈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똑똑똑똑 하는 소리에 맞춰 기계처럼 손가락과 활을 움직였는데, 연습을 하면 할수록 내가 이 음악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즐긴다기 보다, 기계적으로 숙달하고 음들을 기계적으로 정확한 타이밍에 연주해내려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취미생인 나 조차도 이런 생각이 드는데,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얼마나 더 할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어려운 곡을 완벽히 연주해내기 위해 그들은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반복하고 또 반복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음악을 좋아한다는 느낌은 엷어지고 엷어져, 어느새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란 무엇이지?’라는 회의감의 영역까지 도달하지 않을까. 어떤 일에 숙달이 된다는 것은 그 경지까지 가야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기계가 된 것처럼 완벽하게 그 일을 숙달하는 것에서 멈추면 결코 최고의 연주자는 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이미 양철나무꾼처럼 심장 없이 기계처럼 연주를 해내는 자신에게 감정과 심장을 불어넣어야 비로소 프로가 되는 것이 아닐까? 너무 많이 듣고 너무 많이 연주해 진작에 질려버린 그 음악을 다시 마주해, 마치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듯 그 음악을 다시 사랑해 내는 것. 어쩌면 그 경지에 올라야 비로소 프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일도 같지 않을까? 개발자로서의 삶에 숙달되면 될 수록,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느끼는 즐거움도 적어지고, 코드를 짜내는 희열도 옅어진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내가 처음 개발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느꼈던 그 흥분과 열의를 다시 느끼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기 위해 전력으로 노력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스시 장인 지로의 꿈>에 보면 한 평생을 스시를 만든 한 장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오노 지로 씨는 26세 때부터 스시의 길을 걸어와 자그마치 70년을 한결같이 스시를 만든 장인이다. 미슐랭 3스타를 획득한 최고의 쉐프이지만, 그의 경력 앞에서는 미슐랭 3스타라는 표현도 검소하게 느껴진다. 오노 지로씨는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좋아하는 것을 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아니야. 내가 선택한 것을 좋아하도록 해야 한다. 내 앞에 주어진 것을 좋아하도록 노력해야지.
누구나 처음에는 다 자신의 일에 열의를 가지고 그 일을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숙달된다는 것은 그 좋아하는 감정도 서서히 옅어져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우리는 프로이며, 전문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