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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미학

Created
Apr 19, 2024 07:1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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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요리
나는 요리를 좋아하는 편인데, 주 1회는 꼭 가족들에게 요리를 대접하려 한다. 음식을 만드는 행위 자체도 좋아하긴 하는데, 사실 난 그냥 김치찌개 끓이고 볶음밥 만드는 걸 크게 좋아하진 않는다. 먹는 사람의 감동을 위해 온갖 재료와 정성을 오롯이 때려박는 그런 “요리” 다운 요리를 하는 걸 좋아한다. 물론 요리라는 것이 재료를 아낌없이 쓰려 하면 원가율이 상당하기 때문에 항상 고급진 재료를 쓰진 않지만 그래도 가성비 있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바탕으로 최대한 정성들여 쿠킹하려 한다.
 
사실 처음부터 요리를 좋아하진 않았고, 스파게티를 좋아했던 게 저절로 요리하는 습관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초등학생 때 학교 급식으로 스파게티를 처음 접했다. 처음 먹어보는 식감의 면이엇고, 토마토소스의 시큼하면서도 감칠맛 있는 맛이 나는 너무 좋았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이 90년대 중반, 후반인데 당시에는 파스타 소스나 파스타 면을 지금처럼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유튜브는 커녕 인터넷이라는 개념도 생소했는데,당연히 레시피를 알기 위해서는 TV로 요리 프로그램을 찾아 보거나 요리책을 봐야 했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파스타가 너무 좋았고, 어떻게든 집에서 먹고 싶었는데 우리 어머니는 파스타를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큰맘 먹고 서울의 중심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서 이탈리아 요리책을 두 권 사왔다. 그 중 한 권이 <자장면이 싫증난 날엔 이탈리아 요리>라는 책이었는데 내 기초적인 요리 센스나 재료 손질법 같은건 그 책으로 다 배운 것 같다. ‘면을 익힐 땐 알 덴테’ 같은 것도 그 책에서 배웠다. 아무튼, 스파게티를 좋아하던 초등학생이 고심 끝에 요리책을 보고 스파게티라는 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내 첫 요리는 된장찌개도 쌀밥도 아닌 스파게티였다.
 
처음에는 내가 먹고 싶어서 내가 하던 요리였다. 하지만 여러 파스타 종류에 제법 익숙해 지고 자신감이 붙자 친구들을 초대해서 요리해 주기도 했다. 라자냐 라는 것을 만들어 보겠다고 버스로 30분 거리의 이마트까지 가서 라자냐 면을 사왔다. 초여름 날씨에 에어컨은 아직 틀기 전이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1시간 가량을 사투한 끝에 라자냐를 완성했다. 친구들은 그릇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을 만큼 게걸스럽게 내 요리를 먹어줬는데, 그 때 난 처음으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시간이 흘러 군대를 전역하고도, 나는 가끔 요리를 하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유튜브가 대세였기 때문에 유튜브로 쉐프들이 하는 요리 영상을 주로 보곤 했다. 그러다가 에드워드 권 쉐프의 시그니처 버섯 크림 수프를 봤는데 이걸 꼭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곧 어버이날이기도 해서 부모님께 코스요리를 대접해 드리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채요리로 수프와 연어 타르타르를 준비하고, 메인요리로는 동파육을, 그리고 마무리는 구운 연어 스테이크를 얹은 오차즈케로 설계했는데 역설적이게도 가장 많이 공을 들인 게 전채요리인 바로 버섯 크림 수프였다. 수프를 완성하는 데만 장장 3시간이 걸렸다. 버섯을 잘게 다진 다음 팬에 볶는 것만 1시간 넘게 했다. 에드워드 권 쉐프에 따르면 수분을 완전히 날려야 버섯의 향이 응축된다고 했다. 조리를 해도 해도 버섯에서는 끊임없이 수분기가 나왔는데 이걸 완전히 건조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후 조금씩 크림을 추가하면서 스프를 완성했다.
 
그 날의 코스요리는 매우 훌륭했다. 버섯 크림 스프는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격’이 다른 맛이었다. 무시무시한 감칠맛으로 자신도 모르게 뒷목이 당겨오는 그런 맛이었는데 함께 먹는 가족들 모두 압도적인 맛의 폭력 앞에 망연자실할 정도로 맛있었다. 부모님은 매우 행복해 하셨고, 매우 크게 감동하셨다. 그리고 나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게 어떤 느낌인지 그날 확실히 느꼈다.
 
세상은 피드백으로 가득 차 있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근육을 키우면 어느새 거울 앞에서 내 근육을 바라보며 만족하게 된다. 바이올린을 열심히 연습 해 한 곡을 완벽히 연주하게 되면 매우 뿌듯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회사를 1달 다니면 월급이 들어온다. 이 많은 행위와 피드백의 루프 속에서 나는 요리야말로 피드백 루프가 가장 짧은 행위라고 생각한다. 요리를 하는 데는 보통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완성된 요리를 맛보고 감동하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는 찰나의 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한 숫갈을 입에 가져간 뒤 먹는 사람의 얼굴에 퍼지는 행복감, 만족, 웃음기는 불과 몇 초만에 음식을 만드는 이에게까지 전파된다.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은 공연이 끝나고 박수를 받을 때에야 청중의 반응을 확인한다. 월급도 한 달은 다녀야 나온다. 요리는 입에 대는 순간 반응이 나온다.
 
이렇게 빠르게, 이렇게 쉽게 상대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게 바로 요리의 미학이다. 좋은 요리는 세상을 행복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맛있는 것을 먹음으로써 감동하고, 행복해진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고, 본인 스스로도 행복해지는 일이다. 요리는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