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하얼빈

김훈의 하얼빈을 읽었다. 김훈은 문체가 칼 같이 예리하고 힘이 넘친다. 길지 않은 책이라 빠르게 읽었다. 빠르게 읽었지만 무겁게 읽혔다. 재판정에 선 소위 죄인이라는 자는 허물없이 사실을 밝히고 일말의 거짓도 없이 범행을 인정한다. 재판정의 재판장과 원고 검사는 그 진실이 그들이 속한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위협할까봐 겁을 내고, 진실이 감춰지길 바라며 재판을 한다. 원고와 피고가 뒤바뀐 듯한 이 재판의 참상에 역사의 본질은 맞닿아있을 것이다.

소설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사형 선고를 받은 안중근과, 그를 찾아온 신부 사이의 마지막 고해성사였다. 신부는 계속 말할 것을 요구한다. 안중근은 동양평화와 정당성을 이야기한다. 신부는 작게 말하라 한다. 간수가 들으니 작게 말하라 한다. 둘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이윽고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된다.

안중근은 신부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기록도 없고 들은 이도 없기 때문에 짐작만이 가능하다. 나는 의사 안중근 혹은 참모장 안중근으로서가 아닌 인간 안중근으로서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했을 것 같다. 독립군으로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였지만, 기독교인으로서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 마음 속으로는 괴로워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 같다. 나라를 위해서는 옳은 선택이었다고는 해도 인간적인 망설임도 있었을 것 같다. 사형을 앞두고서 남겨지는 가족에 대한 걱정도 있었을 것 같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밤은 깊어가고, 신부와 안중근의 대화는 길어지는데 그 고요함과 적막함이 나는 유난히 애달프고 아름답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