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내 인생은 꽤 많이 바뀌었다. 하던 사업을 정리했고, 백엔드로 전향해 취업했다. 직장인으로서 최대한 규칙적으로 살고자 노력했고, 늦었지만 유럽으로 여행도 다녀왔다.
목차
- 2022년 화두 4가지
- 2023년 버킷리스트, 목표
- 올해의 인상적이었던 장면
- 좌고우면 끝에 깨달은 것
돌아보는 2022년 화두
- 1년 반 넘게 진행했던 사업을 정리한 것
- 백엔드로 전향한 것, 취업한 것
- 규칙적인 삶
- 유럽에 다녀온 것
사업 정리
나는 2020년 말부터 친한 친구 2명과 함께 셋이서 사업을 했다. 친환경 소비재를 만드는 사업을 했고, 나름 성과도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과는 다르다는 생각에 내 지분을 정리하고 나왔다.
1년 반여 시간 동안,
- 친환경 치실 1만 세트를 만들어 한국과 미국에서 판매했다. 미국에서는 꽤 나쁘지 않은 수익을 내며 판매했고, 한국 미국 모두 출시 6개월여 만에 완판했다.
- 2번째 제품을 비건 치약을 기획했고 만들었다. 치약의 경우 내가 주도해 만들었는데 업체 선정부터 품질, 기획 등등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내가 주도해 진행했다.
- 우리 회사는 주식회사였는데, 공동대표이사로 선출되어 대표로 일하기도 했다.
- 자사몰을 직접 구현했다. 프론트엔드와 백엔드 모두 직접 잤고, 네이버 주문형 가맹점 연동, 카카오페이 연동 등을 했다.
사업을 돌아보면 잘 하지는 못했다. 망하지는 않았지만 성공의 싹이 보인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 지지부진하다고 생각했고, 나의 시간을 보다 값지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침 동업하는 공동창업자와 비전이나 가치관도 다르다는 것을 크게 느끼던 차였기에 공동대표직을 사임하고, 내 지분을 액면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청산한 후(사실상 무료), 사업에서 빠져나왔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2개 글에서 자세히 정리해 보았다.
백엔드로 전향, 그리고 취업
첫 경력은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로 쌓았고, 개발을 공부하던 초기에도 내내 프론트엔드를 공부했지만, 내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백엔드 엔지니어로 전향했다.
문득 생각해 보건데 나는 CS나 네트워크, 알고리즘 같은 것들을 좋아했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을 좋아했다.
반면에, 단순작업은 싫어했고, 특히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할 때, 마크업 작업이나 스타일을 적용하는 작업을 싫어했다.
생각보다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는 도메인에 대해 알기 어렵다. 대부분의 도메인 관련 로직은 백엔드에서 처리되기 때문이다. 나는 금융 도메인의 회사에 들어가면 금융을 잘 알게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느 도메인이든 프론트엔드는 프론트엔드였다. 디자이너의 UI를 잘 구현하고, 코드를 잘 짜는 것이면 충분했고, 의외로 도메인을 고민할 기회는 없었다.
첫 직장에서 뭔가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답답함이 있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결국 몸이 아파 퇴사를 하게 되었는데 다시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사업을 정리하고 재취업을 하면서는 백엔드 엔지니어로 지원했다. 많이 부족해서 공부할 것도 많았고, 취업 문턱을 넘기 쉽지 않았지만 지인의 도움으로 운 좋게 지금의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하는 일이 마음에 든다. 백엔드에서 만족하는 것은 여러가지 인데, 도메인 로직을 직접 구현한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이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많고 나름의 노하우도 쌓인다. 알아야 할 것이 많은 만큼 진입장벽이 있다는 느낌도 마음에 든다.
아쉬운 점도 있다. 백엔드는 불안정하다. 이중화를 하고 분산 시스템을 구축해도 서버는 종종 실패하고, 배포하다 보면 버그나 장애가 생기기도 한다. 이런 이슈는 생각보다 크리티컬해서 종종 간담이 서늘해 지기도 한다.
이런 이유에서 마음 놓고 휴가를 길게 가는 것은 조금 눈치가 보인다. 내가 없는 동안 내가 담당한 서비스에 장애가 생기면, 아무리 인수인계가 잘 되어 있더라도 눈치가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규칙적인 삶
사업을 할 때는 규칙적으로 살기 힘들었다. 사업이라는 게 나의 역량과 나의 능력만큼 성과가 나오는 것이기에, 여행, 운동, 규칙적인 잠, 휴식 이런 것들은 조금은 꿈 같은 이야기였다.
모처럼 직장인으로 복귀한 만큼 규칙적으로 살고 싶었다.
- 책을 꾸준히 읽고 싶었다.
- 공부도 하고 싶었다.
- 운동은 제대로 하고 싶었다.
- 잠은 충분히 자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한번 살아봤다.
- 6시에 일어나 회사로 출근했다.
- 7시부터 8시까지는 독서를 했다.
- 8시부터 운동을 하고 9시반쯤 출근했다.
- 7시쯤 밥을 먹고 퇴근하면 돌아와 공부를 했다.
물론 퇴근 후에는 약속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매일 공부하지는 못했다.
유럽에 다녀온 것
30살이 넘어서야 유럽에 처음으로 다녀왔다. 숱한 나라를 여행했고, 여행할 기회가 항상 있었지만, 유럽은 너무 클리셰하다는 생각에 매번 미루고 미뤘었다.
20대 10년의 기간 동안,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중국, 일본을 다녀왔다. 미국에 3개월 살았고 미국 여행도 1번 다녀왔으니 미국만 2번을 갔다. 인도를 2번 다녀왔고, 히말라야에서 만년설도 밟아봤다. 쿠바와 멕시코도 다녀왔다.
결코 적지 않은 여행을 다녀왔지만, 정작 유럽은 한 번도 다녀오지 않은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체코,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다녀왔다.
결론은?
너무 좋았다. 특히 오스트리아 빈은 아주 맘에 들어서, 한 2년정도 살면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유럽이 좋았던 것은
- 사람들이 여유가 있었다. 식당에 가면 함께 간 사람과 느긋하게 이야기하며 2-3시간 천천히 밥을 먹는게 특히 마음에 들었다.
- 문화가 가까이에 여기저기에 있었다. 훌륭한 건축물, 많은 박물관과 들으면 아는 미술작품들, 성당에서 열리는 오르간 연주, 위대한 오케스트라 등등. 문화로 가득했다.
이런 부분들이 마음에 들었다.
유럽 여행기는 조만간 별도의 블로그로 정리해 봐야겠다.
2023년 목표와 버킷리스트
먼저 버킷리스트들을 정리해봤다.
- [ ] 색소폰 배우기
- [ ] 책 50권 읽기
- [ ] Apil Backoffice 리팩토링 → Java / MySQL로 전환
- [x] 연말에 베토벤 9번 합창 듣기
- [ ] 오픈소스 컨트리뷰션하기
- [ ] 매월 브런치에 글 1개씩 발행하기
- [ ] 개발 컨퍼런스에서 발표하기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우선순위 높은 목표는 다음과 같다.
- 색소폰 배우기: 나 스스로에게 행복 한 스푼 정도는 허락해도 될 것 같아서 1월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선생님은 알아본 상태이고, 중고 악기를 구하고 있다. 워낙 재즈를 좋아해서 꼭 한번 배우고 싶었다.
- 매월 브런치에 글 하나씩 쓰기: 언젠가는 작가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려면 우선 글부터 꾸준히 써야겠지? 브런치에는 주로 개발과는 관련이 적은 개인적인 글들을 적고 있다. 앞으로는 횟수도 늘리고, 좀 더 공을 들여 써볼 계획이다.
올해의 인상적이었던 장면
- 어떤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된 집들이
- 드레스덴 성모교회에서 들었던 오르간 연주
집들이
친구 집에 집들이를 갔다. 친하긴 하지만 장점만큼 단점도 많이 보이고, 나와 잘 안 맞는 부분도 보이는 친구였다. ‘적당히’ 친했다고 할 것이다.
집들이에 가서 생각외로 진지한 얘기가 이어졌다. 친구는 왜 집을 사고 싶었는지, 자기가 살아온 삶이 어땠는지 이야기했다. 상당히 깊은 얘기였다.
그날이 지나고 나서, 나는 그 친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마음 속 한 켠에 있던 꺼려하는 감정이 눈 녹듯 사라졌고, 그 친구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때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나 스스로가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행복해 진다는 것이다.
한 사람을 투명하게 이해하게 된다는 것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고 매우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드레스덴 성모교회에서 들은 오르간 연주
매일 낮 12시에 드레스덴 성모교회에서는 공개 예배를 한다. 그리고 그 예배에 참석하면 중간 중간에 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물론 무료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예배에 참석해 함께 기도하고 오르간 연주도 들었다.
대리석으로 된 높은 천장과 웅장한 건물에 오르간 소리가 울려퍼지면, 육중한 기차가 지나가는 철교에 서 있는 것처럼 온 몸이 함께 진동했다. 쩌렁쩌렁하게 대리석을 공명하는 오르간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 가슴도 대리석과 함께 공명하는 것이 느껴졌다.
1시간 정도 되는 시간이었지만, 결코 잊지 못할 기억이었고 매우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좌고우면 끝에 깨달은 것
- 결국 나를 잘 아는 것이 진짜 중요하다. 나를 아는 만큼 사업도 하는 것 같고, 삶도 행복해지는 것 같다. 나를 얼마나 이해하느냐가, 얼마나 더 나 다운 삶을 사느냐가 결국 그 삶이 성공적이었냐 아니었냐를 결정하는 척도같다.
- 어떤 사람을 정말 깊이 이해하게 되면 그 사람의 장점, 단점, 버릇 같은 것들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볼 만큼 깊이 이해하게 되면 꺾이지 않는 애정으로 그 사람을 대할 수 있게 된다.
-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 속에 비를 내리는 것이다. 이성과 논리가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고, 그 마음 속 잔디밭에 비를 내리는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 속 신전에 닿을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명상록>을 읽고 알게된 것인데 사람은 누구나 현재만을 살고 현재만을 소유한다. 과거도 그의 소유가 아니고 미래도 그의 소유가 아니다. 지나간 것은 고칠 수 없고 되돌릴 수도 없으며 다시 경험할 수도 없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통제할 수 없다. 결국 나는 현재만을 살아가기에, 명예로운 사람으로 기록되고자 하는 욕망이나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려는 행위는 무의미한 것 같다. 엄마처럼 나를 키워주신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죽음에 대해 참 많이 생각했고, 두렵기도 했는데 약간의 답을 얻은 것 같다. 지긋지긋한 세상과 작별한다는 느낌처럼 급하게 갈 것도 없고, 이별하기 두려워 꾸물거릴 것도 없고, 그저 눈을 감듯 자연스럽게 봄에 이는 바람처럼 스르르 가는 것, 그런 죽음을 꿈꾸게 되었다.
- 나는 개발자다. 나는 사업가다. 너무 규정지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나고, 나는 나이면 된다. 내가 하는 것이 곳 나인 것이지 거기에 수식어가 필요한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순간 순간 내가 나이기 위해 해야할 것들을 해 나가면 된다. 그것이 아직은 개발이라면 나는 개발자를 하면 되고, 음악이라면 음악가를 하면 된다. 스스로 나를 규정하고 그 안에 가두려고 하지는 말자.
- 급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을 해야 한다. 내 관심의 원이 아니라 내 영향력의 원에 집중해야 한다. 예를들어 날씨가 맑기를 바라는 것은 관심의 영역이지만 내 영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 원칙 중심으로 생활해야 하고, 중요한 것을 놓치면 안된다. 예를들어 가족과 친구를 잃으며 사회적 성공을 거두는 것은 무의미하다.
- 종교는 믿지 않지만 누구나 달란트를 타고 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내 달란트는 무엇일까, 그것을 가장 잘 발전시키고 세상에 기여할 방법은 무엇인지 항상 고민해야 한다.